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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치골 성모성지는 박해 시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신자들이 숨어 살게 되면서 형성된 교우촌으로서 유서 깊은 신앙의 요람지이자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마리아 신심 단체와 티없으신 마리아의 성심에 대한 신심이 최초로 생겨난 장소입니다. 


조선교구 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님와 성 다블뤼 안토니오 신부님(5대 교구장)은 한국 최초 사제인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로 시작된 병오박해(1846)가 끝나갈 무렵, 수리치골 교우촌의 한 오두막에서 박해 받는 조선 교회를 성모님께 봉헌하고 성모성심회*조선 분회를 조직하셨습니다.

(*성모성심회는 1836년 프랑스 승리의 성모성당 주임 데쥬네트 신부가 설립한 신심 단체로 성모성심을 특별히 공경하고 성모성심의 전구를 통해 죄인들의 회개를 하느님께 간구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조선의 박해가 끝나고 신앙의 자유를 찾으면서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진 수리치골은 1984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한국 방문 당시 이곳 성지의 교회사적인 가치를 언급하면서 한국교회의 사적지로서 인정받으며 다시금 교회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페레올 주교님이 1846년 무서운 박해 하에 공주 땅 수리치골에서 이 겨레와 교회를 요셉 성인과 공동 주보이신 성모께 조용히 봉헌하셨습니다.”(1984.5.6. 명동성당에서)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설립자 정행만(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님은 1985년 수집한 자료들을 토대로 여러 차례의 탐문조사와 현장방문을 통해 1986년 현 수리치골 성모성지의 위치를 확인하였고, 대전교구 경갑룡 주교님과 수원교구 김남수 주교님의 허락을 얻어 성지를 개발하기 시작하셨습니다

1988년 한국교회사연구소 주최로 한국 교회의 성모성심 신심과 수리치골이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열려 성모성심회의 창설지가 현 수리치골임을 확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6개월 후에 이 초라한 오두막에 다시 가서, 주일날 우리가 평소에 하는 신심 기도를 했습니다. 일요일마다 우리 신자들이 조선말로 기도를 바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수많은 언어로 마리아를 찬미하고 죄인들의 회개를 청하는 모든 민족들을 생각할 때 내 마음이 얼마나 감동되는지요좋으신 어머니께서 많은 나라에 내려주신 수없이 많은 은혜를 우리에게도 나누어 주셨으면 합니다.”  (184710, 성 다블뤼 주교가 부모님께 보낸 서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