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서 성령님! 새로나게 하소서!
   먼저 이런 귀한 미사의 주례가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 동안 사제생활을 하면서 여러 종류의 미사를 집전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새로 수도생활을 입회하는 자매들과 이미 주님과 교회에 서원한 것을 갱신하는 수녀님들의 중요한 미사를 거행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영광입니다. 이런 자리를 허락하신 수녀원에 감사를 드리고, 무엇보다 가장 감사드려야 할 분은 이 자리에 안 계시지만 김기룡 신부님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느님의 일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여간 처음 봉헌하는 미사인지라 예습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어제 부총장 수녀님께서 예절서를 미리 주시기에 꼼꼼히 읽으면서 오늘 미사의 의미를 묵상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오늘 전례는 크게 3가지의 전례적 상징으로 장식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전례의 첫번째의 상징은 ‘이름’입니다. 예식의 처음 시작이 바로 새로운 이름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시를 하나 읽어드리겠습니다.

꽃이름 외우듯이/ 이해인
우리 산 우리 들에 피는 꽃
꽃이름 알아가는 기쁨으로
새해, 새날을 시작하자

회리바람꽃, 초롱꽃, 돌꽃, 벌깨덩굴꽃,
큰바늘꽃, 구름채꽃, 바위솔, 모싯대,
족두리풀, 오이풀, 까치수염, 솔나리

외우다 보면
웃음으로 꽃물이 드는 정든 모국어
꽃이름 외우듯이
새봄을 시작하자
꽃이름 외우듯이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즐거움으로
우리의 첫 만남을 시작하자

 

우리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먼데서도 날아오는 꽃향기처럼
봄바람 타고
어디든지 희망을 실어 나르는
향기가 되자

   “꽃이름 외우듯이 새봄을 시작하자. 꽃이름 외우듯이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즐거움으로 우리의 첫 만남을 시작하자!” 최 성심의 수산나 꽃, 이 성심의 이냐시오 꽃, 엄 성심의 요한 수녀 꽃, 한 스피리타 꽃....
   성경을 보면 이름이 바뀌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그랬고, 베드로가 그랬으며, 바오로 사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 모두는 새 이름과 함께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입회하신 수녀님들! 이제 여러분은 모두 변화되었습니다.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마치 오늘 사무엘을 부르셨듯이 주님께서 여러분을 당신 종으로 부르셨으며, 여러분은 이에 응답하셨기 때문입니다. 김춘수 시인의 말대로 ‘주님께서 오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여러분은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 여러분의 이름을 불러주었기에 여러분은 주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습니다.’

  오늘 두 번째 상징은 ‘옷’입니다. 어제 저녁미사에 와서 미리 여러분들이 입은 옷을 축복했습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왜 하필이면 옷일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맨 먼저, 어제 오후 내내 교부들의 문헌을 펼쳐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대부분의 고대의 서원 예식이 복장의 변화(착복)로 이루어졌습니다. 지원자는 입고 있던 옷을 벗고 당시 수도승들이 흔히 입었던 거친 투니카를 걸치고, 정결과 고행을 상징하는 띠를 매고, 또 겸손을 상징하는 망토와 손노동을 위해 스카플라가 주어졌습니다.    
   이러한 복장의 변화는 수도승이 하느님을 찾는 데에 자신을 전적으로 투신하기 위하여 세상과 그의 옛 삶을 포기하고자 하는 의지를 공적으로 선언하는 것이었다고 고대문헌들은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서 좀 더 나름대로 옷에 대해 묵상을 하다 보니, 우선 언뜻 드는 생각이 성경을 보면, 옷은 인간이 발명한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후에 무화과나무 잎으로 부끄러운 곳을 가렸습니다. 그러자 이를 보신 하느님이 첫 인류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창세 3,21). 옷이 뭐길래 지어 입히시기까지 하셨을까? 우선 보호기능인 것 같습니다. 옷은 그야말로 ‘의식주’ 중에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보호의 옷을 맨 처음으로 하느님이 지어 입히셨다고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많은 묵상거리가 있는 듯싶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구약의 사제들은 주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마다 그들만 입는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탈출 35,19) 이 연장선에 모세는 아론이 죽자 그의 옷을 벗겨 그의 아들 엘아자르에게 입힘으로써 주님께 봉사하는 직분을 이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민수 20,28). 또한 열왕기를 보면 승천하는 엘리야가 떨어뜨린 겉옷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에 갑절의 영감을 구하던 엘리사는 자기 옷을 둘로 찢고 엘리야의 겉옷을 취합니다. 그리고 그 겉옷으로 강을 내치리니 강이 갈라졌습니다. 곧 겉옷은 능력이었고, 새로운 직분의 시작이었습니다.(2열왕 2장)
   이 밖에도 성경에 나오는 옷이 의미하는 바는 다양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중요한 공통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뀜과 변화입니다. 그렇습니다. 입회하는 3분의 자매들은 이제까지의 삶을 버리고 오늘 부터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총원장 수녀님께서 기도하셨듯이 “주님께 봉사하려고 수도 가정에 결합”되는 바뀜과 변화를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이제껏 여러분이 한 사회인으로 시민으로 양육된 가정에서 이제 천국의 시민, 주님의 종으로 양육될 “수도 가정”에 태어나시어 이름을 얻으셨음에 축하드립니다. 
   이러한 우리의 마음을 바오로 사도께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한(가족)입니다.”(갈라 3,27 )
   주님 안에 사랑하는 수녀님들! 말씀 드린 대로 옷은 보호기능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 어떠한 인간적 위로와 기대를 넘어서는 주님만이 여러분의 방패요 보루요 산성이 되길 기도합니다. 세상이 허락하는 초라한 나뭇잎으로 만든 것이 아닌 튼튼한 가죽옷이 여러분들의 옷입니다.
   수녀님들! 또한 어쩌다 만나게 되는 어려움의 강물을 만날라 치면, 엘리사 예언자처럼 여러분의 옷으로 의심과 유혹의 강물을 쳐 갈라 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들이 입은 옷은 엘리아의 옷만큼이나 충분한 능력이 있습니다. 회수도회의 아버지인 파코미오 성인은 수도복을 그리스도의 군대에 속한 군인들의 의복으로 묘사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힘내십시오. 여러분의 지휘관이 바로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전례의 3번째 상징은 서원서 낭독과 서명입니다.
이 상징은 비교적 후대, 즉 6세기경에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청빈과 정결과 순명이라는 복음적 권고를 자발적으로 따를 것을 수도 공동체에 약속하고 이를 서명하는 행위입니다. 수도자는 이러한 일종의 법적 계약 행위를 통해 장엄하게 자신의 의지를 공적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청빈, 정결, 순명” 모두 일반인은 지키기 어려운 요소들입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본능을 거스르는 것들입니다. 그렇기에 이 3가지 서원을 하는 사람은 오늘 2독서의 바오로 사도와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3,8)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세상을 상대화하고 오직 주님만을 절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청빈은 인간 욕망의 근간인 물질과 소유를 포기함으로써 주님만을 온전히 택하는 봉헌 행위입니다. 또한 순결은 이기적 사랑에 찌든 이 세상에 주님의 사랑을 선포면서, 주님에 대한 “갈림없는 마음”을 봉헌하는 것입니다. 또한 순명은 어쩌면 여러분의 존재 자체에 대한 소유권의 포기라고까지 할 어려운 과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수녀님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의 삶은 종말론적인 삶입니다. 눈을 들어 ‘주님의 날’을 바라보십시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석한 여러분들의 모습을 선취해 바라보십시오.
   요한사도는 말합니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느님, 전능하신 분께서 다스리기 시작하셨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자. 어린양의 혼인날이 되어 그분의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는 특권을 받았다.”(묵시 19, 6) 사랑하는 수녀님들! 여기서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은 특권을 받은 신부가 누구입니까?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요한은 이러한 특권을 입은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그들을 덮는 천막이 되어 주실 것이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입은 옷은 세상에 대한 죽음의 소복이지만, 장차 있을 혼인잔치의 “예복”이 될 것입니다. 또한 미래에는 영원한 불멸의 옷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요한은 미래에 있을 여러분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해줍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어좌 앞에 있고 그분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고 있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그들을 덮는 천막이 되어 주실 것이다.”(묵시 7,14)
   어떻습니까? 힘이 되는 은혜로운 말씀이지요. 더 용기를 북돋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어좌에 앉아서 여러분을 덮는 천막이 되어 주시는 분”의 말씀입니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리지 않는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부른다. 그러니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모쪼록 “달릴 길을 다 달려 불멸의 화관”을 획득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