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6세 교황, 2014년 10월 19일 시복

- 요한 23세 이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성공적 마무리 -
- 그리스도교 일치에 힘써... 역대 교황 최초로 아시아 방문 -
- 주교 시노드 제정한 교황, 시노드 폐막일에 복자품(品)에 올라 -


바오로 6세 교황(재위 1963-78)이 2014년 10월 19일(일) 복자(Blessed)로 선언된다. 제262대 교황인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 성 요한 23세 교황과 더불어 가톨릭교회의 현대화와 세계화를 이끈 주역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19일 로마 시각 10시 30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 제3차 임시총회 폐막 미사를 주례하며 바오로 6세 교황의 시복 예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바오로 6세 교황, 2014년 10월 19일 시복

- 요한 23세 이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성공적 마무리 -
- 그리스도교 일치에 힘써... 역대 교황 최초로 아시아 방문 -
- 주교 시노드 제정한 교황, 시노드 폐막일에 복자품(品)에 올라 -


바오로 6세 교황(재위 1963-78)이 2014년 10월 19일(일) 복자(Blessed)로 선언된다. 제262대 교황인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 성 요한 23세 교황과 더불어 가톨릭교회의 현대화와 세계화를 이끈 주역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19일 로마 시각 10시 30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 제3차 임시총회 폐막 미사를 주례하며 바오로 6세 교황의 시복 예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바오로 6세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기간인 1963년에 교황으로 선출돼 1965년까지 공의회를 이끌었으며, 공의회 문헌을 반포하고 결의사항을 실행해 나갔다. 1964년에는 예루살렘 성지를 방문, 정교회 수장이었던 아테나고라스 1세 총대주교와 만나 그리스도교 일치에 앞장섰고, 세계성체대회 개최지인 인도를 방문하며 아시아 땅을 밟은 최초의 교황이 됐다. 1965년 세계 주교 시노드를 제정했으며, 재임 기간에 추기경단을 꾸준히 늘리고 제3세계 출신을 발탁하는 등 가톨릭교회의 보편성을 구현하려 노력했다. 1969년 한국 최초의 추기경인 김수환 추기경을 임명한 교황이기도 하다.

앞서 교황청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14년 5월 9일, 바오로 6세 교황의 전구*(轉求: intercession) 로 일어난 기적을 승인해 시복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본인과 태아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 낙태를 종용받았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임신부가 이탈리아의 한 수녀에게 기도를 부탁했고, 수녀가 바오로 6세의 상본(holy card)과 제의 조각을 임신부의 배에 놓고 기도한 뒤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다고 한다. 바오로 6세 교황이 시복되면 역대 교황 중 성인은 81명, 복자는 9명이 된다. 20세기 교황들 가운데 성인품에 오른 이는 비오 10세, 요한 23세, 요한 바오로 2세 등 3명이다.
* 전구=다른 사람을 위해 대신 간청하고 탄원하는 행위.
교황 연대표 보기(성인, 복자 표시 포함)

약자와 함께한 목자, 공의회 일꾼 되다

바오로 6세 교황의 본명은 조반니 바티스타 몬티니(Giovanni Battista Montini)다. 1897년 9월 26일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1920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1921년부터 교황청 외교관 학교에서 공부했고 1923년에 교황대사 보좌관으로 6개월간 폴란드에 파견되기도 했다. 1922년부터 교황청 국무원에서 일했고 1924-33년 ‘가톨릭 학생운동’의 지도신부를 맡았다. 1937년 교황청 국무원장이었던 에우제니오 파첼리 추기경의 비서로 발탁됐고, 그가 비오 12세 교황으로 선출된 뒤에는 신임 국무원장을 보좌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포로 문제, 유대인 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활동했으며, 전쟁으로 집을 잃은 무주택자들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미국가톨릭복지협회(NCWC)와 교황청 간 연락 업무를 담당하는 한편, 국제 카리타스 설립에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54년 이탈리아 밀라노 대교구장으로 임명된 그는 교회를 떠난 노동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여러 작업장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교회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힘썼다. 그는 평신도 사도직과 문화 활동을 장려하고 가톨릭 대학교와 신학교에서 사회과학을 가르치도록 권했으며, 청소년 문제에도 관심을 쏟았다. 요한 23세 교황은 1958년 그를 추기경에 임명했고,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준비위원회와 실무조정위원회 임원직을 맡겼다. 몬티니 추기경은 공의회 제1회기(1962년)에 참석했다.

공의회 정신 실천하며 교회의 역할 모색

1963년 6월 21일, 요한 23세를 이어 교황에 선출된 그는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를 교황명으로 택하고 공의회를 속개할 뜻을 밝혔다. 공의회는 제4회기까지 열렸고 1965년 12월 8일 폐막됐다. 제4회기(1965년)에는 지역 주교들에게 교황에 대한 자문 권한을 부여하는 영속적 기구로서 주교대의원회의 설립이 착수됐다. 공의회 후속 조치로 전례 개혁, 미사 중 모국어 사용,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한 대화, 이웃 종교인 및 무신론자들과의 대화 등의 현대화가 이뤄졌다.

바오로 6세 교황은 비행기를 타고 외국을 방문한 최초의 교황이다. 예루살렘 성지 순례와 아시아 방문 외에도 1965년에는 미국 뉴욕의 국제연합(UN) 본부에서 평화를 호소하는 연설을 했고, 1967년에는 터키 이스탄불을 방문했다. 1968년에는 라틴아메리카 대륙에 속한 콜롬비아를 찾아 세계성체대회와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연합회 총회에 참석했으며, 1969년에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교회협의회(WCC) 교회일치사무국과 중앙아프리카를 방문했다. 1970년에는 아시아를 방문하던 중 필리핀 마닐라에서 암살 위기를 겪기도 했다.

또한 그는 다수의 교황 문헌을 통해 교리를 해석하고 세상 속 교회의 역할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대표 문헌으로는 성체성사에 대한 전통적 교리를 재확인한 「신앙의 신비」 (Mysterium fidei, 1965),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의 공동 발전을 위한 방법들을 제안한 「민족들의 발전」 (Populorum progressio, 1967), 부부 관계와 정결의 가치, 올바른 자녀 출산을 위한 부모와 의료인과 사목자의 역할을 설명한 「인간 생명」 (Humanae vitae, 1968), 현대 세계에 부응하는 선교의 방향을 논한 「현대의 복음 선교」 (Evagelii Nuntiandi, 1976) 등이 있다.

공의회 이후 전통주의자들의 반발과 국제 정세의 불안 등으로 어려움도 겪었지만, 바오로 6세 교황은 평신도와 여성의 교회 참여를 증진하고 허례허식을 버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공의회 제3차 회기를 앞둔 1964년에는 여성, 수도자, 평신도의 공의회 입회를 허용했고, 1970년에는 여성 최초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를 교회 학자로 선포했다. 또한 그는 교황으로 선출될 때 받았던 삼중관(tiara)을 팔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썼다. 바오로 6세 교황은 1978년 8월 6일 카스텔 간돌포에 있는 교황 별장에서 미사를 드리다 심장마비로 선종했다.
* 참고한 자료=<가톨릭대사전>(한국교회사연구소), <옥스퍼드 교황 사전>(분도출판사).

[참고]교황들의 시복시성

2014년 10월 19일 바오로 6세 교황이 시복됨에 따라, 가톨릭교회의 역대 교황들 중 성인은 81명, 복자는 9명이 된다. 현 교황인 프란치스코와 생존해 있는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제외한 역대 교황 수는 264명이다. 역대 교황 264명 중에 최소한 복자품에 오른 이가 90명이라 하면 많은 이가 되묻는다. “교황님들은 모두 성인 아니었어요?” 교황직을 수행했다고 자동으로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교황들도 다른 이들과 같은 절차를 거쳐야 복자품과 성인품에 오를 수 있다.

초기 교회의 교황들은 대부분 성인으로 추대됐다. 초대 교황 베드로부터 제35대 율리오 1세(재위 335-352)까지의 교황들은 모두 성인 호칭을 받았고, 제105대 니콜라오 1세(재위 884-885)까지의 교황들 중 성인 호칭을 받은 이는 74명이다. 이 시기의 교황들은 오늘날과 같은 시복시성 절차를 밟았던 것이 아니라 후대인들의 공경에 힘입어 로마 전례력이나 순교록에 등재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이후의 교황들은 제152대 교황 레오 9세(재위 1049-1054)를 제외하면 시성 기록이 존재한다. 복자 교황들은 시복 절차를 밟은 뒤 후대의 교황들에 의해 시복됐다.

중세 이후 성인 교황의 탄생은 드물었던 반면, 20세기의 교황들은 8명 중 3명이 성인품에 올랐다. 1954년에 시성된 성 비오 10세 교황(제257대, 재위 1903-1914), 2014년에 나란히 시성된 성 요한 23세 교황(제261대, 재위 1958-1963)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제264대, 재위 1978-2005)이 그들이다. 비오 10세는 교회법전과 성무일도서를 개정하고 교회의 정통성을 수호했으며,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해 가톨릭교회 현대화의 시작을 알렸고, 요한 바오로 2세는 세계 평화의 사절로 활약했다.

20세기 교황들의 시복시성이 활발한 이유는 뭘까. 신자들의 공경이 전제돼야 함을 감안하면, 제국주의와 세계대전, 이념 대립이 이어진 격변기에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세우는 데에 기여한 교황들의 업적을 첫손에 꼽을 수 있다. 또한 기록수단의 발달로 교황들의 기록이 자세히 남겨지고, 대중매체의 발달로 전 세계의 신자들이 교황의 행보와 인품을 보며 공경하게 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요한 23세는 역사상 최초로 TV를 통해 즉위식을 공개하면서 전 세계에 존재감을 각인시켰고, 요한 바오로 2세도 바티칸에서의 활동과 해외 순방 소식을 전하면서 세계의 신자들에게 친근한 인물이 됐다. 요한 23세는 2000년 시복 이후 시성 조건을 충족할 기적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전의 덕행과 신자들의 공경을 감안해 시성을 결정했다.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종했을 때 여러 나라의 신자들이 바티칸에 모여와 “Santo Subito!”(즉시 시성)를 외쳤던 일화는 유명하다.


출처 : www.cbck.or.kr 알림마당